[2004년 4월 24일 작성]
그동안 날림 포스트를 남발하는 만행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는 반성을 하면서 간만에 조금 성의가 들어간 글을 하나 써봅니다. 어쩌면 자기 자랑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평서체로 건방지게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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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다. 생김새가 아니라 행동 양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일견 사소해보이는 행동의 동기를 유추해본다거나 같은 사건에 대한 각각의 대응을 보고 그것마다의 이유를 붙여본다거나 등등이다. 인간 심리를 연구한다면 너무 거창하지만 비슷하기는 하다.
밥벌이와도 상관이 없고 순전히 재미로 하는 짓이니 전문적이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꽤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다고 혼자 자부하며, 내가 살아가는데 재미 이외에도 여러가지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갖고있다. 그런데 이 짓을 하다보면 인간의 어둡고 사악한 면을 자주 보고 깨닫게 된다.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성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수많은 결함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약간 고달프다.
인간의 어두운 면 중에는 시기심과 열등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에서 두가지는 동일하다. 시기심은 분노라는 감정에 가깝고 열등감은 우울이라는 감정에 가까운 듯한데, 이들은 이란성 쌍동이일지도 모른다. 아니, 열등감만 느끼는 경우는 있어도 열등감이 근저에 깔리지 않은 시기심은 없다고 보이므로 부모자식 관계가 더 적절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열등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지나친 자기비하로 발전하지 않고 자기의 발전을 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도 생각된다. 그런데 시기심을 잉태하면 슬슬 음습하고 어두워진다. 시기심은 곧잘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하고, 때로는 증오로 자라나기도 한다. 내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의 해악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기를 해치고, 잘못하면 범죄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정도에서 그친다.
많은 사람들이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싫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별로 잘나지도 못한 사람이 척을 하는 것은 보기에 역겨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잘난 척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말로 잘난 사람의 잘남과 잘나지 못한 사람의 잘난 척을 구별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 부분은 자신이 없다. 나는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만 짐작하건대, 잘난 척을 하는 사람을 진짜로 잘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고, 잘난 사람을 잘난 척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또는 정말 잘난 것을 알면서도 잘난 척을 한다고 믿으려 애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경우가 바로 시기심과 통한다. 이들은 잘난 사람을 인정하기가 싫은 것이다. 자신이 열등감을 느꼈다는 것을 감추고 싶고, 이것이 시기심으로 자라나며, 상대의 우월함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잘난 척이라고 치부해버리고자한다. 억지로 자기 자신을 속였으므로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종종 적대감으로 발전하게된다.
잘난 척은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부자연스럽다. 반면 진정한 잘남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잘난 사람은 입을 닫고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도 그의 잘난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게끔 되어있다. 요즘 말로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것이 아마 이를 뜻하는 것이리라. 천재성은 결코 가리워지지 않는다. 성형을 한 얼굴은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마련이며, 타고난 아름다움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는 그것을 부정하느냐 긍정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늘 긍정한다. 잘난 사람을 보면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 장점이라고 해도 되겠다.
블로그에서도 잘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잘난 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정말로 뛰어난 재능과 개성이 빛나는 사람들도 있으며, 도무지 같은 세상에 살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타고난 사냥개 기질은 그들의 재능과 개성을 보고 읽으며 감탄하는 것에서 그치지 못하게 한다. 포스트에 매달린 덧글과 안부 게시판의 글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재능이 있고 뛰어난 사람은 확실히 피곤하고 고달픈 점이 많으리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다.
첫번째 피곤함은 숭배자들의 존재일 것이다. 나는 당해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무조건적 호감을 보이고 찬탄을 보내는 것이 받는 입장에서 달갑지만은 아닐 듯하다. 부담스러울 것이리라.
두번째는 따라쟁이들의 등장이다. 가볍게는 흉내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만 심하면 표절까지 발전하고, 더 심각하게는 도둑질을 하는 인간들도 생긴다. 포스트를 통채째로 가져다가 자기 것인양 한다거나, 요리조리 손을 대어 위조를 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안받을 수 없으리라.
세번째는 태클족들의 존재다. 이들이 바로 시기심의 화신들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그저 한심할 뿐인 태클을 건다. 딴에는 가시를 품은 이야기로 상처를 주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주인장의 응대를 보건대 별로 상처입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귀찮은 정도에 불과하리라. 게다가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음침한 의도를 간파당하게 되니 얻는 것 없는 삽질일 뿐.
아예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당신 참 잘난 척 심하다고 하는 등)은 그나마 솔직하기라도 하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며 속에 가시를 감춘 말을 남기고 가는 부류는 조금 더 딱하다. 자신의 치졸함과 숨겨진 열등감과 비틀어진 인간성을 드러내보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앞서 말한 부류, 그다지 교묘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독설을 남기는 부류를 보면 반드시 그의 블로그에 가본다. 예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재미있는 사실 두가지를 알게되었다.
첫째는 그들 대부분이 자의식이 꽤 강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기도 잘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인간형이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게 되었고, 꼴난 자존심(사실 이것은 자존심도 아니다)에 상처를 받고 열등감을 느끼고 이것이 시기심으로 적대감으로 발전하여 결국은 그것을 드러내놓는 바보짓을 하게 된 것이리라. 특히 자기가 가졌다고 믿는 재능,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재능을 상대방이 더욱 많이 가졌을 때가 많았다. 살리에르가 모짜르트를 만난 경우다. 자기보다 뛰어난 감각, 자기보다 훌륭한 글솜씨, 자기보다 깊은 사고력. 자기보다 뛰어난 예술혼 등을 만났을 때 이들은 무너져내리는 모양이다. 참으로 측은하다.
둘째는 더욱 측은하면서도 딱하고 치졸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의 재능에 시기심을 느끼는 경우나 남성이 여성에 대해 시기심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더 뛰어난 것을 참을 수 없고, 여성이 마초인 자신보다 우월한 것은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우습지않은가.
다른 사람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천재를 천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자신의 재능 때문에 피곤해하는 천재들이 우리 범인들 대부분이 당신들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에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과 행복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몇 안되는 비틀린 인간의 깐죽거림은 그저 측은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주어진 재능에 대한 대가라고 가벼이 여겨주기를 바란다.
몇 마디 덧붙이며 마무리를 하겠다.
나 역시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특히 눈으로 보아서 느끼는 예술에 감각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이쪽으로는 전혀 감각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창조하는 사람들에겐 부러움조차 갖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정도도 그저 부러울 뿐이다. 여기서 끝이다. 열등감은 모르겠으나 시기심은 절대 갖지 않는다. 또 글을 멋지게 쓰는 사람들도 부럽다. 글 쓰기는 나도 약간의 재주는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 경우는 살리에르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부러울망정 시기심은 느껴보지 못했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천부적인 재질이 있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편해지는 것이다. 노력을 하면 근처에는 다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천재가 이룬 업적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누구도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열등감을 시기심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 장점을 찾아내면 된다. 누구도 모든 분야에서 천재일 수는 없으며, 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의 모든 것이 나를 앞서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가치없게 생각되는 것이라도 누구나 남보다 뛰어난 점을 갖고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재능이든 성격이든 육체든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자신감을 가지면 된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 장점을 더욱 갈고 닦는다면 금상첨화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장점이 없다고?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장점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질이 좋은 재목이 될 나무는 조금 자라면 나무꾼의 도끼에 잘려버리지만 옹이가 박혀 쓸모가 없는 나무는 천수를 다한다는 멋진 비유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존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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