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2010/06/03 09:40
저는 어제 오후 4시경에 투표를 하러 갔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대 그 시간이 투표소가 가장 한산할 때였거든요. 이른 아침에는 투표 얼른 마치고 놀러(또는 일하러) 가려는 사람들 및 아침잠 없는 노인네들이 많아 제일 붐비고, 차차 줄어들다가 점심 시간 전후로 또 잠깐 붐비다가 또 줄어들고, 문닫기 직전 한시간 전부터 다시 좀 붐비는 패턴인 듯하더라고요.

아무튼, 줄서기 싫어서 잔머리를 굴렸는데 웬걸~!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더구만요. 그것도 이삼십대로 보이는 분들이 대다수였어요. 대략 십여분 기다려서야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여덟번이나 찍어야하는 도장,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엉뚱한 사람 찍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합디다. 뭐 대략 일관성있게 찍고 나왔습니다...

투표를 무사히 마친 후 근처 마트에 들러서 식료품이며 잡화 따위를 사서 배달시키고, 한가하게 동네 한바퀴 돌며 산책을 하며 시간을 좀 보냈습니다. 다섯시 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투표소엔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더군요. 예상외로 투표율이 높은 모양인데그렇다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출구 조사 결과를 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야당의 놀라운 선전, 상대도 안될 것이라고 예상하던 곳이 박빙 또는 우세, 이른바 '노무현의 사람들'의 약진, 진보 성향 교육감의 당선 가능 등등 여론 조사랍시고 발표했던 이야기와는 상반된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유선 전화가 사양길에 접어든 요즘 시대에 과거와 같은 방식의 여론 조사는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간 한다라당 떨거지들이 자신만만하게 구는 꼴을 보면서 기분이 아주 더러웠습니다. 만약 여론 조사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이놈의 나라를 영원히 떠날 계획을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기도 했습니다. 정치하는 인간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뻔한 수작질에 홀라당 넘어가고, 언론같지도 않은 언론 쪼가리에 놀아나고, 벌써 썩어문드러져야할 지역주의에 선거철만 되면 여전히 휘둘리는 내나라 국민들에게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피를 흘리고 눈물을 훔치며 분투한 분들 덕분에 그나마 누리던 '자유'를 또 빼앗겨버리고, 눈 감고 귀 막고 입 닥치고 살아야하는 갑갑한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암울한 시절로 회귀한 지경이지요)

선거 결과를 보니, 아주 흡족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스런 상황이네요. 꽤나 고무적인 소식도 많이 들려옵니다. 특히 경남도지사에 김두관씨가 당선된 것은 놀라우면서도 상쾌한 이야기입니다. 지역주의가 또 한겹 벗겨졌다는 뚜렷한 증거라고나 할까요. 또한 서울시 교육감에 곽노현씨가 당선된 것도 매우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 이 정부의 정책 중 맘에 안드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특히 교육 정책은 더더욱 거슬렸는데, 서울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으니 좀 제동이 걸리겠지요?
아무튼, 아직 이 나라를 떠날 때는 아닌가봅니다. 좀 더 참고 살아봐도 되겠습니다......

예전엔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간첩이 잡히거나 땅굴이 발견되곤 했었죠. 그러면 많은 국민들이 벌벌 떨면서 독재 정부편을 들었습니다. 그게 조작인지 아니면 운좋게도 딱 맞는 시기에 일어난 사실인지는 저도 물론 모릅니다. 아무튼 꼭 그런 일이 생기고, 꼭 선거에 큰 영향을 주었더랬습니다. 이게 이른바 북풍(北風)이지요.

이번엔 배가 한 척 쪼개져 침몰했습니다. 아까운 생명도 많이 잃었습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이 저지른 짓이라고 발표했지요. 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부지기수라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믿는 사람도 아주 많은 모양이었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꽤 많았을 것이며, 세 부류 중 실제로 겁에 질린 사람도 물론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여당은 더욱 강경하게 나갔지요. 더 겁을 먹고 자기들 말을 잘 듣기를 바라면서요. 그들의 생각대로 수구세력이 집결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한판 하자'는 의미로 들리는 발언을 목청껏 외쳐댑니다. 여론은 우익으로 마구 쏠리는 모양새입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그런 꼴을 보는 젊은이들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요?
저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듯합니다. "전쟁나면 자기들이 총칼들고 나갈 것도 아니면서 말은 참 쉽게도 하네. 실제로 전쟁터에 끌려갈 우리 또래 의견은 듣지도 않고. 군대도 안갔다온 쉐이들이 말이야... 이넘들 반대로 찍어야겠구만..." 그래서 결국 투표율도 높아졌고, 선거에서는 바라던 바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 아닐런지요.

뭐든 적당히 햬야지 너무 심하게 막나가면 안되는 법이죠.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북풍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아니라는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정보를 얻을 곳도 예전에 비하자면 무한대로 널렸고, 나랏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는 양반들 숫자는 날이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기를 바랍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당이 "투표율이 높으면 불리하다"는 한심한 소리나 해대면서 그저 국민들 겁주고 협박하는 것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짓,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지...

문득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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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람다

    저도 아침 일찍 투표하고 출근했었답니다.(공휴일에 항상 일해야 하는;;;) 암튼, 말씀대로 매우 흡족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절망할 수준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웠달까요. 이렇게 벽헌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참 반갑고 좋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2010/06/04 12:23 [ ADDR : EDIT/ DEL : REPLY ]
    • 벽헌

      휴일에 노는 맛으로 직장 생활하는 것인데...
      날이 많이 더워졌지요.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2010/06/04 14:23 [ ADDR : EDIT / DEL ]
  2. 벽헌님, 반갑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록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니, 다시 생각해도 참 놀랍고도 멋집니다. 이번 선거 내내는 물론이고 선거 당일에도 선관위의 행태가 영 못마땅했는데, 앞으로 투표율 높이기 캠페인은 대충대충하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우울한 결과도 없진 않지만, 더 나아질 수 있겠다는 희망도 아울러 주는 선거였어요 제겐.

    저 역시 이렇게 벽헌님 목소리 들어서 또한 반갑고 좋습니다. 선거 결과가 실망스럽지 않은 덕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2010/06/04 12:34 [ ADDR : EDIT/ DEL : REPLY ]
    • 벽헌

      선관위는 '관권 선거 위원회'나 '선거 방해 위원회'로 불러야 마땅할 듯합니다. 정치인들만큼이나 나아지는 모습이 안뵈는 인사들이에요.
      아무튼 한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가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지요? 조금 나갔다 싶으면 어느새 또 뒤로 밀리고, 다음번 한걸음은 더 힘들어지고...
      을님, 오랜만에 찾아주셔서 반갑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2010/06/04 14:28 [ ADDR : EDIT / DEL ]
  3. 제가 사는 부산이 완전 한나라당판인줄로만 알았는데요, 구청장까지는 그럴지 몰라도 그 밑은 아주 재밌어요. 민주당 아님 무소속이 반이상이랍니다.ㅎㅎ

    정말 여론조사는 믿을만한게 못되나봐요;

    2010/06/07 00:07 [ ADDR : EDIT/ DEL : REPLY ]
    • 벽헌

      부산과 경남에 사는 분들께 실례가 되는 이야긴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보니 그 동네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모양이라고... 으하하;;;;

      2010/06/07 03:48 [ ADDR : EDIT / DEL ]
  4. 육담

    부마사태? 에서도 보듯 워낙엔 반골동네였는데...
    하여튼 이번 동창회체육대회가 있어 부산모교엘 다녀왔었는데 반MB감정들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한나라당후보들 명함은 땅바닥에 죄찢어버리고..노선배랑 같은 동문이였던 탓도있었겠지만..

    2010/06/12 10:36 [ ADDR : EDIT/ DEL : REPLY ]
    • 벽헌

      하는 일마다 삽질이니 인기가 좋은 것이 이상한 것이겠죠? 그런데 MB 지지율이 50% 넘는다는 소리는 대체 누가 만든 헛소리일까요...

      2010/06/12 19:26 [ ADDR : EDIT /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