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2008/01/04 01:35

[2004년 2월 25일 작성]


어떤 글이 좋은글인가는 철저하게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은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글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개인의 웹사이트나 블로그 등 주인만이 글을 올리게 되어있는 형식의 게시판에 '좋은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면 나는 흥미를 가지고 그 카테고리에 포함된 글들을 읽어본다. 주인장의 취향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고, 내 취향에도 맞는 좋은 글을 만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내 취향에 맞는 글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좋은글'카테고리에 들어있는 글들은 인터넷에서 무한대로 스크랩되는 '이른바 좋은글'들이 대부분이다. 어지간한 크기의 커뮤니티 사이트나 카페 등에 가면 쉽게 발견되는 퍼온글들이 대다수다. 즉 주인의 취향에 의해 엄격히 선정된 좋은글이라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좋은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장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하다보니 내 머리속엔 이런저런 의심이 싹트는 것이었다.

좋은글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좋은글이라고 말하면 그게 좋은글이 맞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좋은글에 대한 뚜렷한 취향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무엇이 있는데 나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내 취향이 기묘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취향에 따른 좋은글의 조건을 생각나는대로 나열해보겠다.

기승전결에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갈 것.

지나친 수식어로 껍데기만 현란하게 장식하지 않은 문장.

번역문에서 흔히보는 국적불명의 문체가 되도록 많지 않을 것.

문학적인 감성이 너무 심하지 않을 것. 다시 말하자면 문학소년스럽지 않은 문장.

글쓴이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문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경험과 머리와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

무엇이든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주제.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번득이는 유머와 위트가 숨어있으면 금상첨화.

......


쓰고나서 보니 조건이 많고도 까다롭기도 하다. 물론 저것들 전부를 충족해야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한둘 정도가 빠진 문장을 만나기만해도 대만족이다. 서넛 정도가 빠져도 대략 만족이고. 아무튼 블로그를 시작한 후 웹사이트를 헤메다니던 시절보다 좋은글을 찾아내는 일이 쉬워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이라면 이미 위 조건 중 상당수를 그냥 먹고가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위의 조건에 전혀 맞지 않더라도 무조건 내게 '좋은글'로 읽혀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나를 '감동'하게 만드는 글이다. 글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소득이 바로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주는 글보다 더 좋은글이 있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쓰기를 하려면 필자가 먼저 자기글에 감동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글에 감동하려면 우선 솔직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자신의 느낌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재주도 필요할 것이다. 꾸며낸 것이 아니고,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는 의도 따위는 배제하고 자신부터 감동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딱 두 차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 글을 써보았다.

한번은 내 과거의 아주 인상적인 순간을 기억하며 쓴 글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마음속에서 울컥하고 치솟는 감동을 경험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어준 사람들의 피드백을 살펴보니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약간은 감동을 느낀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기분이 참 좋았다.

또 한번은 단 한사람에게 읽히려고 쓴 글이었다. 이것이 앞의 경우보다 먼저고, 내 생애 첫경험이었다. 이 글은 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쓰다가 내 감정이 격해져서 거의 울뻔했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이 말하기를 밥을 먹으면서 읽다가 목이 메었다고 했다. 행복한 순간이었고, 내가 감동하는 글쓰기가 다른 사람도 감동시킨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감동. 이것은 글 읽기의 최대 가치고, 글 쓰기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자 보람일 것이다.

글을 읽고 감동하는 것은 행복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글을 읽고 감동하여, 자신의 감동을 다시 글로 적어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감동의 울림이 내게도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비록 미약하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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