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5일 작성]
1. 이 인간은 술이 그다지 센 편은 아니었는데 늘 무진장 퍼마시고 떡이 되어 민폐를 끼치곤 했었다. 우리의 술자리 원칙 중 하나가 '술취해 뻗으면 버리고간다'였는데,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여관방 잡아 재워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인간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은 물론.
그날도 이넘은 술에 취해 떡이 되었고, 기분 좋다고 술상을 내려치다가 소줏잔을 깨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유리 조각에 손까지 베었다. 몸도 못가누는 화상을 등쳐 업고서 그 당시엔 혜화동 로터리에 있던 고려대 부속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는데, 이넘이 갑자기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꿰메주려는 의사에게 일갈하기를 "당신 의사야?! 나는 투사야!!!"
2. 아마도 어느해 여름 무렵이었던 듯, 이넘이 장가를 간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예식장이 춘천이었는지 원주였는지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지방이었다. 학과에서 대대적인 준비를 했음은 물론이다. 대자보 써서 공고도 하고, 참석 못하는 학우들에게 축의금도 받고, 기타등등..
그런데, 인위적인 실수인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이게 '구라'였다. 예식장까지 훠이훠이 찾아갔던 애들이 허탕치고 돌아온 것은 물론이고, 남아있던 학우들도 머리가 텅 비는 공허함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기억으론 당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모두들 화도 내지 않았던 듯하다. 왜 그런 구라를 쳤는지 변명을 듣기는 했는데 그다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왕따를 시키지도 않았고 몰매를 주지도 않았다. 그냥 데리고 다녔고, 술에 취해 떡이 되면 여전히 여관방이나 과방에 업어다가 뉘였다.
(지금 문득 영혼결혼이 어쩌구하는 사건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이게 결혼 구라 사건과 연관이 있는 얘긴지 긴가민가하다. 후배넘들 중 기억나는 인간있으면 가르쳐주기 바람)
3. 해도 달도 계절도 아리까리한 어느날, 이 인간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 뭐랄까 좋게 말하자면 도통한 표정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맛이 좀 간 얼굴로 학생회실에 나타났다. 지껄이는 얘기를 들어보니 길바닥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고 다니는 삐끼에게 낚여서 대화를 나누다가 포섭이 되었고, 그를 따라 모처에 인도되어 신자(信者)가 되는 제사를 받들고서 도인(道人)으로 화하였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까지 포교를 하려는 만행을 저지르는 대신에, 언젠가 세상이 망하게 되는데 그날이 오면 신자 한 사람이 다섯명씩을 데리고서 하늘에 오를 수 있으며, 형님은 제가 모시고 오를테니 염려마시라는 기특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휴거가 실제로 일어나면 맘에 안드는 양반들과 하늘에 오르느니 그냥 땅에 남아서 최후를 맞는 것이 낫다고 믿지만, 그날 이 기특한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넘같이 재밌는 인간하고 같이 하늘에 오른다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도(道)를 믿는다는데 어쩌랴. 게다가 말로 해서 들을 놈도 아닌 것을. 그냥 냅뒀다. 어쩌면 진짜 휴거일이 오면 이넘 덕분에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넘의 신앙생활이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도(道)를 저버리리게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함께 오르기로 마음먹은 다섯명에 들지 못한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재(再)세뇌에 공을 들였는지도 모르겠고, 정해진 날에 도량에 나가서 도를 닦아야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귀찮았을지도 모르겠고, 도단(道團)에서 원하는 바를 물심양면으로 따르지 못해서 짤렸는지도 모르겠으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기상천외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야든동 그는 다시 이전의 그로 돌아와 술을 퍼마시고 떡이 되어 널부러지는 골치거리가 되었다.
4. 오랜동안 행방불명이 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다가 문득문득 이 인간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즐거운 시간을 갖거나 걱정에 빠지곤 했었다. 이 인간이 없어졌다고 술자리 파하고 나서 여관을 잡고 널부러진 인간을 업어다 누이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아이는 늘 나오기 마련이었으며, 신입생을 받을 때마다 올해는 제발 모두가 정상인이기를 바랐으나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인간만큼 징한 녀석은 없었다.
5. 흉을 조금(?) 보았으니 이젠 좋은 이야기도 해줘야겠다. 이 인간의 고향은 강원도 모처, 고등학교 시절에 비록 지방신문이지만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고는 치고 다녔지만, 스승 및 선배 제위에게 예의바르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후배들도 나름대로 챙기려고 했으며(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정신일 때는 품행도 비교적 방정한 젊은이였다.
칭찬거리는 요 정도밖에 없다보다.
6.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요놈 근황 아는 녀석있으면 알려주라.. 갑자기 궁금하다.)
1. 이 인간은 술이 그다지 센 편은 아니었는데 늘 무진장 퍼마시고 떡이 되어 민폐를 끼치곤 했었다. 우리의 술자리 원칙 중 하나가 '술취해 뻗으면 버리고간다'였는데,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여관방 잡아 재워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인간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은 물론.
그날도 이넘은 술에 취해 떡이 되었고, 기분 좋다고 술상을 내려치다가 소줏잔을 깨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유리 조각에 손까지 베었다. 몸도 못가누는 화상을 등쳐 업고서 그 당시엔 혜화동 로터리에 있던 고려대 부속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는데, 이넘이 갑자기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꿰메주려는 의사에게 일갈하기를 "당신 의사야?! 나는 투사야!!!"
2. 아마도 어느해 여름 무렵이었던 듯, 이넘이 장가를 간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예식장이 춘천이었는지 원주였는지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지방이었다. 학과에서 대대적인 준비를 했음은 물론이다. 대자보 써서 공고도 하고, 참석 못하는 학우들에게 축의금도 받고, 기타등등..
그런데, 인위적인 실수인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이게 '구라'였다. 예식장까지 훠이훠이 찾아갔던 애들이 허탕치고 돌아온 것은 물론이고, 남아있던 학우들도 머리가 텅 비는 공허함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기억으론 당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모두들 화도 내지 않았던 듯하다. 왜 그런 구라를 쳤는지 변명을 듣기는 했는데 그다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왕따를 시키지도 않았고 몰매를 주지도 않았다. 그냥 데리고 다녔고, 술에 취해 떡이 되면 여전히 여관방이나 과방에 업어다가 뉘였다.
(지금 문득 영혼결혼이 어쩌구하는 사건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이게 결혼 구라 사건과 연관이 있는 얘긴지 긴가민가하다. 후배넘들 중 기억나는 인간있으면 가르쳐주기 바람)
3. 해도 달도 계절도 아리까리한 어느날, 이 인간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 뭐랄까 좋게 말하자면 도통한 표정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맛이 좀 간 얼굴로 학생회실에 나타났다. 지껄이는 얘기를 들어보니 길바닥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고 다니는 삐끼에게 낚여서 대화를 나누다가 포섭이 되었고, 그를 따라 모처에 인도되어 신자(信者)가 되는 제사를 받들고서 도인(道人)으로 화하였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까지 포교를 하려는 만행을 저지르는 대신에, 언젠가 세상이 망하게 되는데 그날이 오면 신자 한 사람이 다섯명씩을 데리고서 하늘에 오를 수 있으며, 형님은 제가 모시고 오를테니 염려마시라는 기특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휴거가 실제로 일어나면 맘에 안드는 양반들과 하늘에 오르느니 그냥 땅에 남아서 최후를 맞는 것이 낫다고 믿지만, 그날 이 기특한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넘같이 재밌는 인간하고 같이 하늘에 오른다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도(道)를 믿는다는데 어쩌랴. 게다가 말로 해서 들을 놈도 아닌 것을. 그냥 냅뒀다. 어쩌면 진짜 휴거일이 오면 이넘 덕분에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넘의 신앙생활이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도(道)를 저버리리게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함께 오르기로 마음먹은 다섯명에 들지 못한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재(再)세뇌에 공을 들였는지도 모르겠고, 정해진 날에 도량에 나가서 도를 닦아야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귀찮았을지도 모르겠고, 도단(道團)에서 원하는 바를 물심양면으로 따르지 못해서 짤렸는지도 모르겠으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기상천외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야든동 그는 다시 이전의 그로 돌아와 술을 퍼마시고 떡이 되어 널부러지는 골치거리가 되었다.
4. 오랜동안 행방불명이 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다가 문득문득 이 인간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즐거운 시간을 갖거나 걱정에 빠지곤 했었다. 이 인간이 없어졌다고 술자리 파하고 나서 여관을 잡고 널부러진 인간을 업어다 누이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 아이는 늘 나오기 마련이었으며, 신입생을 받을 때마다 올해는 제발 모두가 정상인이기를 바랐으나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인간만큼 징한 녀석은 없었다.
5. 흉을 조금(?) 보았으니 이젠 좋은 이야기도 해줘야겠다. 이 인간의 고향은 강원도 모처, 고등학교 시절에 비록 지방신문이지만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고는 치고 다녔지만, 스승 및 선배 제위에게 예의바르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후배들도 나름대로 챙기려고 했으며(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정신일 때는 품행도 비교적 방정한 젊은이였다.
칭찬거리는 요 정도밖에 없다보다.
6.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요놈 근황 아는 녀석있으면 알려주라.. 갑자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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