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영화들2008/01/06 04:34

[2007년 6월 28일 작성]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 켄 로치(Ken Loach)의 1969년 작품입니다.
배리 하인즈(Barry Hines)의 소설 '케스 - 매와 소년[A Kestrel For A Knave]'이 원작이라고 하네요.


요크셔의 탄광촌에 사는 '빌리'라는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집을 나간지 오래된 아버지는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고, 생과부가 된 어머니와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는 형과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는 모양인데, 동급생들에 비해 체구가 작고 가냘픕니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잘 못하고 선생님 말도 안듣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친한 친구도 별반 없고, 덩치 큰 녀석들에게 더러 괴롭힘도 당하고, 선생님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인, 이른바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녀석이지요.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곧장 취업의 길에 들어서야 하는 처지인데, 빌리는 '절대로 광부가 되기는 싫다'는 생각만 갖고 있을 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 따위는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을 주변을 일없이 싸돌아다니던 빌리는 무너진 성터에 매의 둥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몰래 매의 새끼 한마리를 꺼내옵니다. 그리고 책을 구해 독학을 하면서 매의 훈련을 시작합니다. 빌리는 아마도 난생처음으로 뭔가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셈이고, 취미이자 삶의 낙을 얻게 된 것이죠. 빌리가 공을 들이고 노력한 만큼 매의 조련도 착착 순조롭게 진행이 됩니다. 더불어 빌리의 내면에도 작은 변화가 움트기 시작하고요.


이쯤에서 주인공 빌리와 매의 사진을 한장 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가 참 서글프게 생겼죠?
아무튼, 이 즈음에서 매우 인상깊은 장면이 등장합니다. 수업 시간에 딴청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들킨 빌리는 아무 흥미도 없고 무엇을 해도 관심이 없는 쓸데없는 녀석이라는 질책을 듣고, 이어서 '너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는 요구를 받게됩니다. 빌리는 머뭇거리다가 자기가 기르는 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된 빌리는 전문적이고도 상세한 설명을 청산유수로 쏟아냅니다. 인간이라면 아마 누구든 하나 정도는 마음 속에 품고 있을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광경, 참으로 감동스런 장면이었습니다.


매는 이제 거의 완벽하게 조련이 되어서 발목을 묶은 끈을 풀어도 도망치지 않고 빌리의 손으로 다시 날아들 정도가 됩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은 조금도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고, 학교를 졸업한 후의 미래도 여전히 불투명하고, 존재감없는 천덕꾸러기인 처지 역시 마찬가지지만 빌리는 이제 과거의 그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열정의 대상이자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케스'를 갖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이 근처까지 진행되었을 때, 슬슬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빌리와 케스는 오래오래 잘먹고 잘살았다'는 쪽으로 끝나지 않을 듯했거든요. 빌리와 케스의 이별이 영화의 엔딩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나마 좋은 쪽이라면 빌리가 케스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놓아 보내는 정도인데 요건 좀 상투적이고.. 못된 어른이 몰래 훔쳐가는 것이 아닐지, 어머니나 형이 팔아먹는 것은 아닐지, 아니면 다 자란 매가 야성에 눈을 뜨고서 훌쩍 날아가버리는 것은 아닐지...


켄 로치 감독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영화이자 초기의 대표작인 '케스', 오래된 작품이라 화질도 별로 안좋고 미남 미녀는 한 사람도 안나오고 스케일도 작고 볼거리가 풍성한 것도 아니지만 이른바 '명화'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라고 여겨집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사회성을 담고 있으나 지나치지 않고,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이라는 놈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는 명품이네요.


영화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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