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8일 작성]
The Ox-Bow Incident
감독 : 윌리엄 A. 웰먼
주연 : 헨리 폰다, 다나 앤드류스
1943년 작품.
대부분의 서부극은 영웅과 악당의 대결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악당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영웅에게 응징을 당합니다. 보통 주인공에게 총맞고 죽지요. 우리는 악당의 파멸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쁜놈이니 당해도 싸다고 여기고,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에 박수를 보냅니다. 주인공의 처벌도 폭력의 일종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여간해서는 갖지 않습니다. 영웅의 폭력은 '정의'라는 믿음 때문이겠죠. 정의를 구현한 것이므로 약간 도를 넘치거나 법을 초월한 행위도 쉽사리 용납합니다.
'옥스보우 인서던트'도 서부극이며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다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서부극과는 아주 다릅니다. 악당과 영웅의 대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대만이 서부일 뿐, 서부극하면 떠오르는 총격전이나 결투 장면 추격전 등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매우 독특하고 의미심장하며, 재미도 있고 스토리도 훌륭한, 한마디로 참 멋진 영화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좀 의문입니다.
아무튼 스포일러 잔뜩 섞어서 본격적으로 감상문 시작합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서부의 자그마한 마을, 사내 하나가 미친듯이 말을 몰아 들어옵니다. 그가 가져온 소식은 근처 목장의 주인인 킨케이드가 총을 맞고 죽었다는 급보입니다. 킨케이드의 친구인 판리는 다혈질인 성품답게 마구 흥분을 하고, 그의 흥분은 모여든 마을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당장이라도 추적대를 만들어 떠나려고 법석대기 시작합니다. 현명한 노인 데이비스는 흥분한 군중을 달래보려 애쓰지만 씨도 안먹힙니다. 노인은 그나마 이성적인 카우보이 카터(헨리 폰다)에게 판사와 보안관을 찾아 데리고 오라는 부탁을 합니다. 카터는 출타중인 보안관 대신 임무를 맡고있는 임시보안관과 판사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더욱 흥분하여 범인을 잡으면 즉석에서 목을 매어 죽일 작정들을 하고 있고, 판사의 설득도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킨케이드 목장의 낙인이 찍혀있는 소떼를 몰고가는 세 사람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나타나고, 마을 시장까지 나서서 선동을 하니 대세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데이비스 노인과 카터는 사형(私刑)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라도 막아볼 생각으로 추적대에 합류합니다.
늦은 밤, 추적대는 옥스보우 계곡에 들어서고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있는 세 명의 용의자를 발견합니다. 두들겨 깨워서 범행을 자백하라고 윽박지릅니다. 부인을 해보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소를 샀다고 말하지만 믿어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킨케이드의 권총까지 발견됩니다. 길에서 주웠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들릴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교수형을 집행하려고 올가미를 만들어 나무에 걸어놓습니다. 데이비스 노인과 카터는 용의자의 말에 진실됨이 있음을 느끼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장 죽이지 말고 마을로 데려가 법에 맡기자는 설득 뿐입니다. 추적대의 리더인 시장은 다수결을 제안합니다. 법을 선택한 사람은 노인과 카터를 포함하여 단 일곱명뿐입니다. 돌보아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족이 있다는 호소는 단호하게 무시되고, 다만 유서를 남길 기회만 주어집니다. 유서를 쓰고, 대단한 은전이라도 베풀듯이 허용한 2분간의 기도를 마치고, 포박된 채로 말에 태워지고, 목에 올가미가 걸립니다.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고 글을 풀어갈 재주가 없네요..)
보통 영화같으면 이쯤해서 영웅이 활약을 해야하겠지요. 헨리 폰다가 주인공이니 그가 영웅 역할이라면 이제 뭔가 해야합니다. 멋진 총솜씨를 뽐내어 린치를 막거나, 폐부를 흔드는 명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거나 뛰어난 추리로 중요한 증거를 찾아내거나 하리라고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카터는 그냥 고뇌에 빠진 얼굴로 보고만 있습니다. 말채찍이 휘둘러지고, 세 명의 용의자는 목이 매달립니다. 총질을 하여 확인사살까지 합니다. 그리고 추적대는 이른바 '정의'를 구현한 것이니 의기양양하여 귀환길에 오릅니다. 저 앞에서 출타했던 보안관이 나타납니다. 추적대는 자신들이 이미 법을 집행했음을 자랑합니다. 보안관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말합니다. 킨케이드는 죽지 않았으며 그를 쏜 범인은 자기가 이미 잡아놓았다고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마을 술집에 모여서 자책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카터가 죄없이 죽은 이의 유서를 읽어주는 장면입니다. 유서의 내용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을 죽인 사람들은 평생을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할테니 한편 불쌍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정의란 옳고 그름을 제대로 구별하여 행하는 것이라는 말로 마칩니다. 이 영화가 하고싶은 말이 이것이겠죠. 정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 폭력이 행해지고 있는가?
보고난 기분이 참으로 개운치못한 영화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강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죄없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잘 해결이 되었더라면 당장 기분은 편하겠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겠지요. 그저 그런 영화의 하나가 되어 기억 속에서 금세 사라졌을 것입니다. 찜찜하지만 이러한 결말이 현실에 가깝다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이 작품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75분밖에 안되는 짧은 영화, 60여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참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군중심리에서 비롯되는 비이성적인 행동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옳고 그름을 그저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하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자행되고 있을지 모르는 '그릇된 정의'를 앞세운 폭력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게다가 그것이 그릇된 정의가 아니라 진실된 정의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과연 정의라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정의라는 것이 현재에 존재하기는 하는가요? 답이 안나오는 질문만 거듭하게 됩니다..
결말까지 다 이야기해버렸으니 이런 말씀드리기가 참 송구스럽지만, 기회가 생기면 한번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 이 글의 내용이 희미해질 즈음에 보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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