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3일 작성]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 - 1947년 작, 흑백
감독 : 엘리아 카잔
출연 : 그레고리 펙, 도로시 맥과이어, 셀레스트 홈, 앤 리비어, 존 가필드 등
시작하기 전에..
영화를 보고 느낀점이나 감상 등 하고싶은 이야기를 스포일러를 넣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을만한 재주는 갖지 못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줄거리며 극적 반전이며 모두 내키는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작정입니다. 그러니 영화 내용 알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셔야합니다.
이 작품은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는, 당시로서는 꽤 논란거리가 되었던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란 '유대인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사상' 정도로 간단히 말할 수 있겠고, 인종차별의 하나라고 봐도 되겠지요. 미국이 인권과 자유의 수호자인양 떠들어대지만 온갖 편견과 차별과 불평등의 근원지라는 사실은 대충 아시지요.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유색인에 대한 불평등은 물론이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취업이나 진학에 차별을 당한다거나 출입할 수 없는 업소가 있다거나 따돌림을 당하고 놀림감이 되는 등등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답니다.
필립 그린(그레고리 펙)은 꽤 알려진 논픽션 작가인데, 뉴욕에 있는 한 잡지사에 고정 칼럼을 맡기로 하고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와는 사별했고, 가족으로는 나이든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잡지사 편집장은 그에게 반유대주의에 관한 글을 써볼 것을 제의합니다. 필립은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수락을 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 구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편집장이 주최한 파티에 갔다가 그의 조카인 캐시(도로시 맥과이어)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연애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반면 반유대주의에 대한 글은 도무지 진척이 안되어 고민하던 필립은 실제로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유대인 행세를 하여 차별을 직접 경험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편집장과 애인 뿐, '필립 그린'은 '필립 그린버그'가 되어 유대인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갑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거나 피상적으로만 짐작하던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고, 필립은 반유대주의의 문제는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실제로 차별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반유대주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만이 전부인 사람들, 인종차별자들을 경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면 침묵하는 사람들, 자신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위할 뿐인 지식인들,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자코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차별이 없는 사회는 그저 허망한 꿈일 따름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인종 차별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단지 그것뿐인 사람들을 이 영화에서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칭합니다. 좋은 사람들 맞기는 하지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옳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필립은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없으면 발전도 개혁도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필립이 유대인 행세를 하고부터 애인과의 관계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캐시 역시 그저 '좋은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차츰 커지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가, 캐시가 좋은 사람에 안주하는 것을 극복하고 필립에게 돌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해피엔드라고 해도 되겠지요. 반유대주의(나아가서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대안은 제시된 셈입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 차별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옳지 않음을 말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이 영화가 제시한 문제를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 한번 대입시켜보면 어떨까요. 유대인을 외국인 노동자(이주노동자)와 바꾸면 어떻게 되나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특정 지역 출신자에 대한 편견으로 바꿔보면 어떻게 됩니까. 영화의 상황과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요? 지역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출신 지역이 어딘가에 따라서 그 사람됨이나 성격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린데, 요즘도 어딘가 술집 한 구석자리에 가면 '모모 지방 인간들은 어쩌구저쩌구','어디 출신들은 이러쿵저러쿵', '그 동네 얘들은 절대로 안돼' 따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나요? 그 자리엔 이른바 '좋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있을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그런 망발을 하는 사람을 경멸하기도 하겠지만 그냥 잠자코 있습니다.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일 수도 있고, 말하는 사람이 윗사람이기에 몸을 사리는 것일 수도 있고, 나서기가 망설여져서 그럴 수도 있겠고, 맞서서 이야기해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잠자코 있으면 결코 발전도 변화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거의 육십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한 편 보고서 이런 얘깃거리를 찾아냈으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닌 셈입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잘 만들어져서,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흠잡을데 없이 잘생긴 그레고리 펙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고요.
1948년 20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주조연상(Celeste Holm)을 수상했고,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후보에만 올랐습니다. 감독인 엘리아 카잔은 이 작품 이외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워터프론트(1954)' '에덴의 동쪽(1955)' 등의 명작들을 연출한 양반이지요. '워터프론트'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인데, 나중에 한번 이 카테고리의 소재로 삼아볼까합니다.
끝으로 제목인 'Gentleman's Agreement'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Gentleman'은 침묵하는 다수의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들은 침묵하고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혹은 차별과 편견이 실재하는 것을 모른체함으로써 '반유대주의'에 암묵적으로는 동조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Agreement'겠지요. 잠자코있는 것은 '묵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인 듯하네요.
'철지난 영화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좋아하는 영화 50선 - 4 (0) | 2008/01/06 |
|---|---|
| 내가 좋아하는 영화 50선 - 3 (0) | 2008/01/06 |
| 내가 좋아하는 영화 50선 - 2 (0) | 2008/01/06 |
| 내가 좋아하는 영화 50선 - 1 (0) | 2008/01/06 |
|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 - 편견과 차별 (0) | 2008/01/06 |
| 열두명의 성난 사람들 (0) | 2008/01/06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