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제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쓰는 영화이야기입니다.
영화 싫어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싫어하지는 않는데 다른 분들과 비교를 해보면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배우든 감독이든 정말로 유명한 양반들 밖에 모르고, 뭐 아무튼 영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이거저거 따지고 볼줄도 모르고, 촬영 기법이니 뭐니에 대해서도 깜깜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영상미라는 것을 제대로 감상할줄도 모른답니다. 그러니 극장에 자주 안가게 됩니다. 팝콘 씹는 소리며 얼라들(정신연령 포함) 떠드는 소리가 짜증난다는 이유도 큰 몫을 하지만 제 수준으로는 극장의 대형화면으로 보나 TV수상기로 보나 거기가 거기라는 것이지요.
제게 좋아하는 영화나 재미있는 영화의 기준은 오로지 스토리입니다. 영화를 제대로 보는 분들은 스토리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찾아내시는 듯한데 저는 그거 모르거든요. 그러니 '본다'는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해도 맞을 듯합니다. 스토리가 잘 짜여져있을수록, 말이 제대로 될수록, 헛점이 없을수록, 상투적인 것이 아닐수록, 그리고 좀 복잡하면 더욱 좋아라합니다.
그래서 로맨스와 코메디 쪽은 별로 취미가 없습니다. 사랑 이야기는 대충 얘기가 뻔하고, 코메디는 스토리가 부실한 편이 좀 많은 축이지요. 물론 아닌 것도 있겠고, 그러면 좋아합니다. 아무튼 저 두가지가 합쳐진 로맨틱 코메디는 가장 취미없는 계통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무조건 들고 부셔대는 액션영화도 별로고요.
좋아하는 장르는 응당 추리 형식을 가진 영화들이지요. 치밀한 수사물이나 법정 스릴러, 음모론, 잘 짜여진 SF, 사기치고 속여먹는 이야기, 스릴과 서스펜스, 요런 계통이면 예쁜 여배우가 하나도 안나와도 불만없이 봅니다. 뭐 감동적인 이야기나 가족용 드라마 등도 스토리만 탄탄하면 좋아하고요. 아무튼 다른 거 다 부실해도 스토리만 좋으면 최고라는 얘기죠.
예전에 어디에선가 걸작 영화 백편을 선정해놓은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목록을 보다보니 대충 알만한 영화들이고 이렇게저렇게 본 것들도 많고 못봤어도 들어본 기억이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근데 꽤 상위권에 오른 영화인데 듣도보도 못한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열두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라는 솔깃한 제목인데다가, 법정물이라는 정보가 있더군요. 기회가 생기면 한번 봐야겠다고 기억해두었는데 어제 바로 그 기회가 생겼습니다.
세상에나! 1957년에 만든 흑백영화가 이렇게 근사할 수가 있다니요! 영화를 보는 내내 담배도 한 개비 안피우고 그야말로 몰입해버렸습니다. 짜임새있고 헛점이 없는 스토리에, 담고있는 내용 좋고, 의미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이것저것 던져주는 등등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였습니다.
주연은 헨리 폰다고, 감독은 누군지 까먹었습니다. 열두명의 성난 사람이란 배심원 12명을 가르키는 것이고요. 영화 맨 처음에 법원 건물의 내부가 잠깐 나오고, 맨 마지막에 법원 밖 풍경이 잠시 나오는 것 이외에는 모두가 배심원들이 판결을 결정하는 자그마한 방에서 진행이 됩니다. 열두명 배심원이 자리에 앉았다가 섰다가 창문 곁으로 갔다가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저 한 장소에서 줄창 떠들어대는 것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의상이니 세트 등에는 돈이 거의 안들었겠죠.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봐도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우범지대에서 자라난 비행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칼로 찌러 살해한 사건의 심리가 막 끝난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배심원의 평결만 남은 것이죠. 유죄로 결정이 되면 소년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래층에 사는 노인과 건너편에 사는 여자의 강력한 증언이 있었고, 기타 상황증거도 소년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매일 얻어터지고 살던 아들이 홧김에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의논을 시작한 열두명의 배심원 중 열한명이 유죄라는 의견을 내고, 단 하나 주인공만이 무죄일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에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배심원제는 만장일치를 요하므로 단 하나인 소수의견이지만 무시될 수 없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날, 에어컨도 없는 좁은 방에 갖혀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이들은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증거들의 헛점이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배심원들 각각의 성격이 드러나고 가치관이 부딪쳐 갈등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줏대가 없는 사람, 어서 마치고 야구장에 갈 생각만하는 사람,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 사려깊은 사람, 논리적인 사람, 마음 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 피고와 같이 슬럼가에서 자라난 사람, 소심한 사람... 이들이 언쟁하고 토론하고 분석하고 설득하면서 이야기는 숨쉴 틈도 주지않고 진행되어갑니다.
평범한 시민인 이 열두명의 배심원의 손에 걸려있는 소년의 목숨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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