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3일 작성]
세시 좀 넘은 시간에 잠시 걷기 운동이라도 할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늦은 산책이 좋은 것은 길거리에 사람이며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등이 없어서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터벅터벅 돌아다녀도 뭔가에 부딪치거나 받힐 걱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한적하고 한가롭지요.
늦은 시간이라도 거리는 꽤나 시끄럽기 마련이라 보통 주택가 골목을 요리조리 다니는데 오늘은 갑자기 목이 많이 말라서 음료수 생각이 간절하기에 큰길로 나섰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갈증 해소하고 내친 김에 큰길 따라서 주욱 걸어가 보았습니다.
상황을 추리해보건대, 어디선가 마구 퍼마신 다음에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생리적 현상을 참지 못하여 그나마 좀 어두운 곳을 골라 먹은 것을 확인하고, 다리도 풀리고 취기는 더욱 치받아 올라와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다가 건물 입구에 주저 앉았고, 여자는 더욱 힘들어서 드러누웠고, 앉고 누운 김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겠지요. 둘의 자세나 상황으로 보아 그냥 두면 계속 편안히 주무실 듯했습니다.
잠깐동안이나마, 흔들어 깨워서 집에 가라고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예전에 길바닥에 드러누운 취객을 깨워주다가 봉변당하는 경험을 한 이후로는 날씨가 얼어 죽을 정도로 쌀쌀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기로 했거든요. 술취한 개라고들 하잖아요..
지금 시간, 이미 창밖은 환하게 밝았습니다.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라면 벌써 그 자리를 지나가고도 남은 때입니다. 그들이 도촬의 제물이 되기 전에 누군가 마음씨 착한 사람의 덕을 입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를 바랄 뿐입니다. 꼭두새벽부터 간밤의 지저분한 흔적을 지우느라 수고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계신데, 어쩌면 그 분들께 조금 욕을 먹고 개망신의 위험은 모면했으리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네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우리 생활을 편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기능일텐데, 그게 불안감과 신경쇠약과 쓰잘데없는 눈치보기 등을 야기하는 흉악한 도구가 된다면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허락없이 도촬을 한다거나,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인물 사진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거나하는 짓거리들을 철저하게 막을 시기가 된 듯합니다. 계몽도 해야겠고, 필요하다면 좀 더 강한 법규도 만들어야겠지요.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존엄성을 누리지 못함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찍기만 하고 올리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모자이크를 하면 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은 맘에 안듭니다. 동의없이, 몰래 찍힌다는 것 부터가 기분 더럽고, 그것이 바로 사생활 침해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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