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1일 작성]
'글의 운명'이라.. 뭔가 좀 거창하지요, 아닌가..?
저는 이따금 글에도 운명(팔자)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열심히 쓰고서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에러가 나서 날라가버리는 글은 세상에 나올 팔자가 아닌 놈이고, 성의없이 대충 써갈겼는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인 글은 인기를 끌 팔자를 타고난 재수좋은 놈이고, 반면 심혈을 기울여서 나름대로 좋은 글을 만들어냈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불쌍한 팔자도 있고 말이지요. 논쟁을 하려는 글이 아니었는데 중간에 들어간 한 부분 때문에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맘 먹고 싸워보려고 도전을 했는데도 상대가 백기를 들어서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묻혀있었는데 누군가 발굴해서 링크를 해주는 덕분에 갑자기 스타가 되는 수도 있겠고, 의도하지 않은 문제가 생겨 비공개 카테고리로 들어가거나 삭제가 되어 천명을 누리지 못하는 수도 있겠습니다.
애물단지가 될 팔자를 타고난 글도 있는 듯해요. 제가 한 일년 전에 모 사이트에 올린 글이 하나 있습니다. 한적한 게시판이었는데, 그 사이트 운영자가 그 글을 메인에 거는 덕분에 일주일만에 조회수가 만을 넘었고 코멘트가 주렁주렁 달리게 되었죠. 복사되어 다른 사이트로 옮겨진 횟수도 제가 아는 것만 오십회가 넘습니다. 그런 반향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글이었고, 썩 마음에 들만큼 잘쓴 글도 아니어서 좀 당황스러웠지요. 태클도 무수하게 받았고, 그거 일일이 받아쳐주느라 심력 소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참, 그 때 도와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반면 그 글 덕분에 알게 된 분들도 꽤 되고, 몰랐던 사이트도 많이 알게 되기도 했지요.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 맞기는 한데, 속도 썩였으니 애물단지가 된 셈이지요.
그런데 이놈이 또 작은 문제를 일으켰네요. 어떤 분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에 알게된 사실인데, 그 글이 네이버 지식인의 오픈백과에 등록이 되어있더군요. 문제는 등록한 사람이 제 새끼를 자기 새끼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양심불량이지요. 요걸 어쩌나 좀 고민을 했습니다. 네이버측에 신고를 해버릴까하다가, 일단 당사자에게 쪽지를 보냈습니다. 출처 표시하고 사과하면 봐준다고요.
아무튼 그 글이 또 속을 좀 상하게 했으니 과연 팔자가 좀 센 녀석인게 분명한 듯하네요.
문득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는 말이 뜬금없이 떠오릅니다. 하늘과 땅에 쳐진 그물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는 소린데, 인터넷이라는 그물망에서 남이 만든 것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도 언젠가는 걸리게 되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동네가 무척 넓은 것 같지만 어찌보면 참 좁거든요. 양심에 어긋나는 짓하면 자기 마음도 편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언젠가는 걸려서 망신당할 위험도 있다는 사실..
'글의 팔자'라.. 이 글은 어떤 팔자를 타고났을까요. 그저 무난하게 읽혀지고, 약간의 공감도 받다가,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뒷자리로 물러나는 평범한 팔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발 빛도 못보고 에러 메세지와 함께 사라지는 불쌍한 놈만 아니기를 바랍니다.
(애물단지의 정체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 굳이 알려서 그 사람 망신주고 싶지는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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