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1일 작성]
- 夏日卽事 -
여름날의 일
輕衫小簟臥風欞 가벼운 적삼 작은 대자리로 바람 부는 난간에 누웠다가
(경삼소점와풍령)
夢斷啼鶯三兩聲 두어번 꾀꼬리 우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니
(몽단제앵삼양성)
密葉翳花春後在 빽빽한 잎사이에 숨은 꽃은 봄 지나도 피어있고
(밀엽예화춘후재)
薄雲漏日雨中明 엷은 구름에 새어나는 햇빛은 빗속에서도 밝구나
(박운루일우중명)
초여름의 일을 노래한 시이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한창 더운 여름에 읽어도 시원한 기분이 드는 작품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자에 대자리 깔고 얄팍한 모시 적삼을 입고 편안하게 드러누워 낮잠에 빠지는 상상만해도 더위가 좀 가시는 듯합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 같지요.
작가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 단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빽빽한 수풀 속에 아직도 피어있는 봄꽃이 보입니다. 햇볕을 덜 받아 서늘한 곳이므로 아직 여름인 줄 모르는 꽃이 피어있는 것이겠지요. 마침 지나가는 여우비가 내리는 모양인데,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은 여전히 눈부시게 밝습니다. 햇빛은 환하게 비추는데 비도 보슬보슬 내리는 광경이 떠오르시지요?
제 3구와 4구를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빽빽한 잎과 엷은 구름이 역경이고 지지않은 꽃과 새어나는 햇빛이 그것을 이겨낸 것이라고 본 것일텐데, 일리는 있는 듯하지만 제 마음엔 그다지 흡족하지가 않습니다. 그냥 여름 낮잠에서 깨어난 시인의 눈에 비친 풍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맘에 듭니다. 그래야 나른하면서도 상큼하고, 촉촉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이 더욱 아름답게 살아나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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