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 한문2008/01/04 15:07

[2004년 6월 24일 작성]


           -  幽  居 -
            한적한 거처에서

幽居臥小林     작은 숲에 누워있는 한적한 거처
(유거와소림)
靜室一煙氣     고요한 방에 한 줄기 연기 오르네
(정실일연기)
夜雨林花爛     밤에 내린 비에 숲의 꽃들은 빛나고
(야우림화란)
梅天風氣凉     장마철 바람은 서늘하구나
(매천풍기량)
葉濃禽語警     나뭇잎 짙은 곳 새 소리 들려오고
(엽농금어경)
泥濕燕飛忙     흠씬한 습기 속에 제비는 바삐 나는데
(니습연비망)
何以消長日     무엇으로 긴 하루 소일할 것인가
(하이소장일)
新詩寫數行     새로운 시 몇 줄 지어보려네
(신시사수행)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작품입니다. 숲속 한적한 거처에서 맞는 아침 풍경을 읊은 시입니다. 방 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아마도 향을 피워놓은 것을 뜻하는 듯한데, 저는 담배연기로 생각하려고 그럽니다. 담배 피우며 방문 넘어 숲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괜찮은 것 같거든요.

밤에 내린 비 덕분에 꽃들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매천'은 매우(梅雨)'의 계절이라는 뜻이고, '매우'는 음력 4~5월 경 중국 양자강 유역에 내리는 장마를 이릅니다.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린다고 해서 매화 매자를 썼다고 합니다. 오늘이 음력 5월 7일이니 딱 요즈음이지요.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새들도 아침을 맞아 지저귀기 시작하고, 제비는 습기가 많은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습기 많은 날 제비가 낮게 날아다니는 것 많이들 보셨을 듯합니다.

작자도 하루를 시작해야하는데 은거한 선비가 딱히 할일이 있겠습니까. 싯구나 몇 줄 지어보는 수밖에요. 참 팔자 늘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매월당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등졌으나 편안하지만은 않은 작자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는 세상을 등진 것도 아니고, 매월당에 비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지만 오늘 아침 기분이 이 작품과 기묘하게 얽혀드네요.

아무튼 천재의 솜씨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는 등의 감각과 경물들이 어울려서, 어지러우면서도 고요하고 활기차면서도 나른한 아침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mojolog.net/trackback/13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