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4일 작성]
- 幽 居 -
한적한 거처에서
幽居臥小林 작은 숲에 누워있는 한적한 거처
(유거와소림)
靜室一煙氣 고요한 방에 한 줄기 연기 오르네
(정실일연기)
夜雨林花爛 밤에 내린 비에 숲의 꽃들은 빛나고
(야우림화란)
梅天風氣凉 장마철 바람은 서늘하구나
(매천풍기량)
葉濃禽語警 나뭇잎 짙은 곳 새 소리 들려오고
(엽농금어경)
泥濕燕飛忙 흠씬한 습기 속에 제비는 바삐 나는데
(니습연비망)
何以消長日 무엇으로 긴 하루 소일할 것인가
(하이소장일)
新詩寫數行 새로운 시 몇 줄 지어보려네
(신시사수행)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작품입니다. 숲속 한적한 거처에서 맞는 아침 풍경을 읊은 시입니다. 방 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아마도 향을 피워놓은 것을 뜻하는 듯한데, 저는 담배연기로 생각하려고 그럽니다. 담배 피우며 방문 넘어 숲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괜찮은 것 같거든요.
밤에 내린 비 덕분에 꽃들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매천'은 매우(梅雨)'의 계절이라는 뜻이고, '매우'는 음력 4~5월 경 중국 양자강 유역에 내리는 장마를 이릅니다.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린다고 해서 매화 매자를 썼다고 합니다. 오늘이 음력 5월 7일이니 딱 요즈음이지요.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새들도 아침을 맞아 지저귀기 시작하고, 제비는 습기가 많은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습기 많은 날 제비가 낮게 날아다니는 것 많이들 보셨을 듯합니다.
작자도 하루를 시작해야하는데 은거한 선비가 딱히 할일이 있겠습니까. 싯구나 몇 줄 지어보는 수밖에요. 참 팔자 늘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매월당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등졌으나 편안하지만은 않은 작자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는 세상을 등진 것도 아니고, 매월당에 비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지만 오늘 아침 기분이 이 작품과 기묘하게 얽혀드네요.
아무튼 천재의 솜씨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는 등의 감각과 경물들이 어울려서, 어지러우면서도 고요하고 활기차면서도 나른한 아침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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