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 한문2008/01/04 15:00

[2004년 6월 2일 작성]


             -  首 陽 薇  -
                   수양산 고사리

當年叩馬敢言非     그 때에 말고삐 당기며 감히 잘못을 말하니
(당년고마감언비)
大義堂堂日月輝     큰 의로움이 당당하여 해와 달처럼 빛났네
(대의당당일월휘)
草木亦霑周雨露     풀과 나무도 주나라 비와 이슬에 젖어 자란 것
(초목역점주우로)
愧君猶食首陽薇     그대가 수양산 고사리 먹은 것도 부끄럽구려
(괴군유식수양미)



성삼문의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입니다.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음을 당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소개드린 시는 성삼문의 의기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를 알아야 합니다. 많이들 들어보셨겠지만 간단히 설명을 드릴게요.


두 사람은 형제로 고죽국의 왕자였습니다. 아비가 동생인 숙제에게 왕위를 전하고자 했으나 아비가 죽은 후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였고, 백이 역시 아비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둘은 아예 달아나서 당시 인망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던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문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등극하여, 폭정을 일삼던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서 신하가 왕을 치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했습니다(주나라는 은나라의 제후국이니 신하가 맞습니다). 무왕이 듣지 않고 폭군을 정벌하였고, 이들은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결국 굶주려 죽었다고 합니다.
폭정을 휘두르는 임금을 벌하는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루기로 하고요, 아무튼 백이와 숙제는 절개와 의로움의 상징으로 칭해져왔습니다.


이제 성삼문은 이들을 어떻게 읊었는지 보기로 하겠습니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이들의 의로움이 일월처럼 빛이 난다고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목숨을 걸고 말린 행위가 바로 빛나고 당당한 대의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은 것은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수양산 고사리도 주나라 땅에 난 것이며, 주나라의 비와 이슬을 맞고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자신이라면 그것 캐먹으며 연명하느니 그냥 죽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될 듯합니다.


그러면 과연 성삼문은 이 작품에서 말한 것을 지켰을까요? 단종 복위 계획이 들통난 후 성삼문의 집에 가보니 그동안 녹봉으로 받은 곡식을 한톨도 쓰지 않고 모아놓았다고 합니다. 또 그가 올린 장계를 자세히 살펴보니 신하 신(臣)자를 쓸 자리에 모두 거(巨)자가 쓰여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문초를 받는 자리에서 인두로 지져대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세조를 '전하(殿下)'가 아니라 '나리'라고 부르며 임금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의연하고 꿋꿋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을 지킨다는 자세가 바로 이것이겠습니다.


[추가]

자려다가 문득 마음이 동하여 몇 자 덧붙입니다.
세조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은 접어두고, 성삼문 선생은 소신을 따르다가 실패하여 죽었습니다. 그가 과연 패배한 것일까요? 또는 덧없이 죽은 것일까요? 비록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신원이 되었으나, 아무튼 푸르른 이름이 역사에 남았으며, 선생의 작품을 읽고 행적을 들으며 의로움과 절개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감동하는 후인들이 있습니다. 반면 살아서 부귀를 누린 자들은 후손들이 그의 자손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기도 어렵겠지요.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기고 지는 것에 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싸우는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조잘대는 저와 같은 무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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