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 한문2008/01/04 14:56

[2004년 5월 22일 작성]


      -   偶  吟   -
          우연히 짓다

殘月西沈後    잔월도 서쪽으로 진 뒤에
(잔월서침후)
古琴彈歇初    오랜 거문고 타기를 비로소 쉬네
(고금탄헐초)
明喧交暗寂    밝고 소란함과 어둡고 적막함이 섞이니
(명훤교암적)
這裏妙何如    이 속의 오묘함이 어떠하느냐
(저리묘하여)


명기 황진이가 찍은 사내 중에서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는데 화담(花潭) 서경덕 선생만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바로 그 화담 선생의 시를 한 수 골랐습니다. 이 분의 작품들은 정(情)보다 의(意)를 주로 하는 것이어서 읽기가 좀 수월하지 않습니다. 도학자다운 작품들이라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더군요. 즉, 이 시는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저도 확실히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좋기는 하거든요...



말난김에 화담 선생과 황진이에 얽힌 이야기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진이는 고승인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던 수법을 화담 선생에게도 써먹기로 했답니다. 비가 오는 날 속치마저고리만 입고서 화담 선생의 거처를 찾아간 것이지요. 얇은 옷이 비에 젖었으니 그 장면은 알아서들 상상해보시고... 그런데 화담 선생은 황진이를 방에 불러들여 옷을 벗기고 손수 물기를 닦아주고서 마른 자리를 깔아주고 누워서 몸을 말리라고 했답니다. 그리고는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네요. 황진이는 오기가 나서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삼경이 넘자 드디어 화담 선생이 곁에 눕는 것이었습니다. 옳지, 그대도 역시 남자일 뿐이다..라고 쾌재를 불렀겠지요. 그러나 금방 얕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황진이는 미색으로 유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며칠이 지난 후 예를 갖추어 다시 화담 선생을 찾아뵙고 제자로 삼아주기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뒤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유명한 송도삼절(松都三絶)에 관한 고사입니다. 황진이가 화담 선생에게 송도에는 뛰어난 것이 셋 있는데 하나는 박연폭포고, 하나는 자기 자신이고, 남은 하나는 바로 선생님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화담 선생과 황진이는 서로 존중하고 흠모하는 관계를 지속했으리라는 사실이 분명한 듯합니다. 야사에도 황진이와 화담 선생이 야릇한 관계였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기도 하고요.


제가 전에 이 얘기를 해줬더니만 화담 선생이 고자였나보다는 망발을 했던 인간이 있었답니다. 절대 아닙니다. 화담 선생은 장가도 갔고, 자손도 보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첩을 두거나 기생과 바람을 피우는 것이 욕이 아니던 시절에 화담 선생은 왜 천하일색이자 빼어난 재주까지 갖춘 황진이를 마다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황진이의 재주를 인정하여 기생이라는 노리개가 아닌 인격체로 대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합니다. 나마저 넘어가면 이 도도한 여인의 콧대를 누가 꺾겠느냐는 생각도 조금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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