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代人作 -
대신 지어주다
賤妾自棲托 천첩이 기대어 살면서부터
(천첩자서탁)
願郞無我忘 그대가 저를 잊지 말기를 바랐답니다
(원랑무아망)
芳心石不轉 꽃다운 마음은 돌과 같이 구르지 않는데
(방심석불전)
離恨水俱長 이별의 한은 물처럼 길기만하네요
(이한수구장)
霜後菊猶艶 서리 내린 뒤 국화는 더 아름답고
(상후국유염)
雪邊梅亦香 눈 가의 매화가 더 향기롭지요
(설변매역향)
須知豫讓子 아시지요? 예양자가
(수지예양자)
不死范中行 범중행을 위해 죽은게 아님을
(불사범중행)
조선시대에 시 잘 짓고 멋들어지게 놀줄 아는 풍류남아를 꼽아보자면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해야하는 양반이 바로 백호(白湖) 임제입니다. 황진이 묘에 가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로 시작하는 시조를 지은 이야기는 꽤 유명하지요.
소개한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대신 지어준 것입니다. 그 다른 사람은 기생일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지요. 임제가 어느 기방에 한잔하러 갔는데 기생 하나가 멀리 떠난 연인에게 자기를 잊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자 시 한수 지어주기를 부탁했겠지요. 술값 대신에 시를 지어달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맨 뒤 두 구절은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예양은 중국 전국시대 진(晉)나라 사람인데, 처음에 범씨와 중행씨를 모시다가 뒤에 지백(智伯)의 신하가 되어서 총애를 받았습니다. 지백이 왕권 다툼에서 패하여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하자, 예양은 복수를 결심하고 변소에 숨어들어가 기회를 노렸으나 발각되었습니다. 조양자는 충신이라 여기고 놓아주었으나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서 모습을 바꾸고서 다시 기회를 노렸습니다. 다리 아래에 숨어서 조양자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양자의 말이 그가 숨은 근처에 와서 움직이지않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주변을 조사하게 하였고,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조양자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며 예양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겉옷을 벗어달라고 청하였고, 받아든 옷에 세번 칼질을 하고서 자결을 했다고합니다.
사마천의 사기 중 자객열전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일화입니다.
그럼 임제는 마지막 두 구절에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요. 예양이 처음에 모시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알아주는 지백을 위해 목숨을 바쳤듯이, 기녀도 그저 첫사랑만을 무조건 일편단심으로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지요. 그의 마음도 변하지 않아야 자기도 그러하리라는 것, 변심을 하면 나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실제로 기생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겠고, 임제의 생각이 그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나는 서리 내린 후의 국화나 눈에 핀 매화처럼 아픔을 견디면서 당신을 향한 애정을 변치않고 있지만 혹시 당신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대략 좋지않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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