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14일 작성]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매우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 그만큼 유명하고 많이 쓰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고사의 배경 이야기도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몇 군데 검색을 해보니 좀 소략하기도 하고, 한편 이 고사가 그저 단순히 우정을 뜻하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배경 이야기부터 알아볼까요.
관중(管仲)은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환공(桓公)을 도와 제나라를 당시 가장 막강한 제후국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이 관중이 말년에 친구인 포숙(鮑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곤궁하던 시절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눔에 늘 내가 많이 가졌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찌기 포숙을 위해 일을 도모하였으나 번번이 곤궁하게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 여기지 않고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가 있음을 이해하였다. 내가 벼슬길에 올라 세 번이나 쫓겨났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아주었다. 전쟁터에 나가 세 번이나 도망을 쳤으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으니 내가 노모를 모시고 있음을 알아준 것이다. 공자 규(糾)가 패했을 때 동료인 소홀(召忽)은 죽고 나는 잡히어 모욕을 당하였는데,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의에는 개의치 않으며 공명(功名)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진정한 친구 관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해와 믿음이지요. 친구가 곤궁에 빠지고 실수를 저지르고 남들에게 지탄을 받는 일을 저질렀을 때에도 그가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그의 편에 서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나갈 때는 친하게 지내다가 정작 친구의 힘이 필요할 때면 외면하는 것은 우정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고, 매일 붙어다니며 같이 놀고 이야기 나누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관계에 믿음과 이해가 굳게 자리잡고있지 않다면 관포지교라는 말을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세요?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친구가 있나요, 그리고 내가 믿고 이해하는 친구가 있나요?
또 하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믿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나를 믿고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닐런지요.
출전 :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 중 관안열전(管晏列傳).
참고 : 관안열전의 해당 부분 번역(위 청색 글씨)의 끝부분, 공자 규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관중은 제나라 공자인 규를 모시고 있었고, 포숙은 역시 공자인 소백(小白, 후의 환공)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제나라의 왕위를 다투는 싸움에서 규가 패배하였습니다. 소백은 관중을 죽이려 하였으나 포숙의 의견을 받아들여 관중에게 대부 벼슬을 주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관중을 절의를 저버린 사람이라며 욕을 했는데, 이 일을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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